[#66 공익칼럼] 식탁의 경고 10│식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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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경고 10. 식탁 앞에서』
-식탁의 경고를 마치며 ‘식탁 앞에서’-
· 밥상 위의 기록들
지난해 ‘사과가 너무 비싸요!-애플레이션’이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이 여정은 우리 식탁 위에 놓인 불안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김치와 공동체’를 고민하고, 무심코 쓰던 ‘아크릴 수세미’ 속 미세플라스틱을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나물의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비린내’가 사라진 식탁의 허전함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발효의 시간’이 주는 느림의 미학을 되새기고, ‘커진 냉장고’ 속에서 넘쳐나는 음식들의 명암을 살폈습니다. ‘급식 이야기’를 통해 다음 세대의 밥상을 걱정했으며, ‘숫자로는 읽을 수 없는 음식들’까지, 총 9편의 글을 통해 매일 마주하는 우리의 식탁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 사라진 시간의 맛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비효율', ‘가치 없는 노동’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식재료를 손질하며 느끼던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배달된 그럴싸한 밥상 위에는 음식의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물만 남았습니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흙에서 영양분을 얻어,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그 '시간' 대신 가격표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9편의 칼럼을 통해 매달 마주했던 불안의 실체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효율과 편리함으로 식탁을 채울수록 정작 우리 몸을 구성하고 마음을 살찌우는 '온기'는 식탁에서 멀어졌습니다. 식탁이 단순한 에너지 공급처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배고픈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본래 우리에게 식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장소만은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조리법과 식재료의 지혜가 전해지는 통로였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통해 몸의 균형을 찾는 영양학적 지혜가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나누고 사회적 예절을 배우는 배움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를 떠올려 봅니다. 작은 텃밭에서 얻은 소박한 재료로 한 끼를 준비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텃밭에서 재료를 구하고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평소 잊고 있던 ‘한 끼의 수고’를 다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방송에서 보여주는 수고가 실제 농사의 긴 시간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한 번의 수확이 있기까지는 사계절 동안 흙과 씨름하며 생명을 길러내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화면에서 만나는 한 끼의 과정은 그 긴 시간의 일부일 뿐입니다.
좋은 음식을 사는 것과 음식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누가, 어떻게, 얼마나 긴 시간을 들여 이 음식을 키웠는가?’를 묻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의 웰빙 방식이 오히려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몸이 기억하는 본연의 감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동안 식탁을 들여다보며 발견한 것은 거창한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땀 흘려 가꾼 흙의 시간을 존중하고,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내 식탁 위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렸던 ‘식탁의 주권’을 되찾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식탁의 주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알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으며 누군가의 어떤 노동을 거쳐 왔는지를 살피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입니다.
· 누구의 땀방울일까?
저는 요즘 아이와 마주 앉아 자주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가 먹는 이 음식이 단순히 돈을 주고 사 온 상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땀방울이 맺힌 결실이라는 점을요. 농부가 어떤 마음으로 씨앗을 심고 흙과 씨름하며 길러냈는지를 함께 상상해 본다면 한 톨의 밥알까지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라고요.
식탁에서의 이와 같은 이야기는 단순히 음식을 남기지 말라는 훈육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예의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식탁 앞, 우리의 오늘을 되찾는 시간
우리 모두가 자연으로 돌아가 농부가 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고 거창한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 당장 우리의 식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몇 가지 작은 실천을 제안해 봅니다.
첫째, 무엇을 먹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재료와 첨가물을 살펴보고 내가 무엇을 먹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먹는 밥상의 풍경은 달라질 것입니다.
둘째, 식재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지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누군가의 땀방울이 맺힌 결실임을 인식하는 순간, 음식은 더 이상 소비되는 상품이 아닌 생명의 가치로 다가올 것입니다.
셋째, 제철 식재료와 원산지에 관심을 가져봅시다.
땅이 허락한 제철 음식을 찾고 생산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곧 자연의 시간과 우리 몸의 시간을 맞추는 일입니다.
‘식탁의 경고’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이 긴 여정을 이제 갈무리합니다. 경고는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명의 식탁으로 돌아오라는 초대였습니다. 불안은 경고로 끝내고, 이제는 다시 건강한 식탁의 주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 마트의 진열대 앞이든 배달 앱의 목록 앞이든, 혹은 가족과 마주 앉은 식탁 앞에서든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이 음식은 어떤 시간을 통과해 내게 왔을까?’
그 짧은 질문이 멈췄던 우리의 감각을 다시 깨우고, 식탁을 온기로 채우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 공익칼럼 '식탁의 경고' 시리즈는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홈페이지와 블로그 '공익홀씨단' 메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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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홀씨단 소개
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기자단입니다.
시민기록자로서 사회적가치 확산을 위해 활동합니다.
-식탁의 경고를 마치며 ‘식탁 앞에서’-
· 밥상 위의 기록들
지난해 ‘사과가 너무 비싸요!-애플레이션’이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이 여정은 우리 식탁 위에 놓인 불안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김치와 공동체’를 고민하고, 무심코 쓰던 ‘아크릴 수세미’ 속 미세플라스틱을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나물의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비린내’가 사라진 식탁의 허전함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발효의 시간’이 주는 느림의 미학을 되새기고, ‘커진 냉장고’ 속에서 넘쳐나는 음식들의 명암을 살폈습니다. ‘급식 이야기’를 통해 다음 세대의 밥상을 걱정했으며, ‘숫자로는 읽을 수 없는 음식들’까지, 총 9편의 글을 통해 매일 마주하는 우리의 식탁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 사라진 시간의 맛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비효율', ‘가치 없는 노동’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식재료를 손질하며 느끼던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배달된 그럴싸한 밥상 위에는 음식의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물만 남았습니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흙에서 영양분을 얻어,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그 '시간' 대신 가격표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9편의 칼럼을 통해 매달 마주했던 불안의 실체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효율과 편리함으로 식탁을 채울수록 정작 우리 몸을 구성하고 마음을 살찌우는 '온기'는 식탁에서 멀어졌습니다. 식탁이 단순한 에너지 공급처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배고픈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본래 우리에게 식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장소만은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조리법과 식재료의 지혜가 전해지는 통로였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통해 몸의 균형을 찾는 영양학적 지혜가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나누고 사회적 예절을 배우는 배움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를 떠올려 봅니다. 작은 텃밭에서 얻은 소박한 재료로 한 끼를 준비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텃밭에서 재료를 구하고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평소 잊고 있던 ‘한 끼의 수고’를 다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방송에서 보여주는 수고가 실제 농사의 긴 시간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한 번의 수확이 있기까지는 사계절 동안 흙과 씨름하며 생명을 길러내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화면에서 만나는 한 끼의 과정은 그 긴 시간의 일부일 뿐입니다.
좋은 음식을 사는 것과 음식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누가, 어떻게, 얼마나 긴 시간을 들여 이 음식을 키웠는가?’를 묻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의 웰빙 방식이 오히려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몸이 기억하는 본연의 감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동안 식탁을 들여다보며 발견한 것은 거창한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땀 흘려 가꾼 흙의 시간을 존중하고,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내 식탁 위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렸던 ‘식탁의 주권’을 되찾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식탁의 주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알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으며 누군가의 어떤 노동을 거쳐 왔는지를 살피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입니다.
· 누구의 땀방울일까?
저는 요즘 아이와 마주 앉아 자주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가 먹는 이 음식이 단순히 돈을 주고 사 온 상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땀방울이 맺힌 결실이라는 점을요. 농부가 어떤 마음으로 씨앗을 심고 흙과 씨름하며 길러냈는지를 함께 상상해 본다면 한 톨의 밥알까지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라고요.
식탁에서의 이와 같은 이야기는 단순히 음식을 남기지 말라는 훈육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예의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식탁 앞, 우리의 오늘을 되찾는 시간
우리 모두가 자연으로 돌아가 농부가 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고 거창한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 당장 우리의 식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몇 가지 작은 실천을 제안해 봅니다.
첫째, 무엇을 먹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재료와 첨가물을 살펴보고 내가 무엇을 먹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먹는 밥상의 풍경은 달라질 것입니다.
둘째, 식재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지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누군가의 땀방울이 맺힌 결실임을 인식하는 순간, 음식은 더 이상 소비되는 상품이 아닌 생명의 가치로 다가올 것입니다.
셋째, 제철 식재료와 원산지에 관심을 가져봅시다.
땅이 허락한 제철 음식을 찾고 생산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곧 자연의 시간과 우리 몸의 시간을 맞추는 일입니다.
‘식탁의 경고’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이 긴 여정을 이제 갈무리합니다. 경고는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명의 식탁으로 돌아오라는 초대였습니다. 불안은 경고로 끝내고, 이제는 다시 건강한 식탁의 주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 마트의 진열대 앞이든 배달 앱의 목록 앞이든, 혹은 가족과 마주 앉은 식탁 앞에서든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이 음식은 어떤 시간을 통과해 내게 왔을까?’
그 짧은 질문이 멈췄던 우리의 감각을 다시 깨우고, 식탁을 온기로 채우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 공익칼럼 '식탁의 경고' 시리즈는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홈페이지와 블로그 '공익홀씨단' 메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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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홀씨단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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