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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공익홀씨단이 만난 사람] ‘정원의 철학자들’ 대표 설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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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에서 피어난 흙과 생명의 철학
- ‘정원의 철학자들’ 대표 설은주 인터뷰

1. 도시의 삶에서 ‘정원’을 마주하다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활동 기자단 ‘공익홀씨단’은 지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공동체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아카이빙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광명을 기반으로 자연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공동체 ‘정원의 철학자들’​을 찾았습니다.

이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설은주 교수는 오랫동안 숭실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기독교 사상과 상담학, 교육학 등을 가르쳐왔고 기독교 환경단체에서 교육위원장도 맡았습니다. 그가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공간은 강의실만이 아니었습니다. 친히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꾸며 사람, 자연, 예술, 인문학이 어우러진 ‘움직이는 자연학교’ 「숨,쉼,샘 생태정원」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정원과 농장에선 흙을 만지고, 식물을 심고,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정원이라는 작은 공간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다시 연결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설 교수에게 정원은 단순히 꽃과 나무를 가꾸는 공간이 아닙니다. 도시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서 잠시 벗어나 흙을 밟고 생명을 돌보면서, 잊고 있던 자신의 감각과 관계를 회복하는 공간입니다.

이번 만남은 설 교수가 정원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2. ‘정원의 철학자들’, 도시에서 잃어버린 정원을 되찾다
평생 농부로 흙에서 살아오신 부모님께 물려받은 땅을 일구며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은 설은주 교수에게 이미 오래된 일상이었습니다. 최근 3년 동안은 이러한 활동이 광명시마을자치센터 지원사업과 연결되면서 보다 체계적인 지역공동체 활동이 되었습니다.

설 교수는 현대인이 ‘정원을 잃어버린 실낙원의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흙을 만지며 생명을 돌보는 수고는 단순한 취미와 물리적 노동을 넘어 인간이 상실한 '최초의 고향'을 다시 개척하는 거룩한 노동이며 원복(original blessing)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정원은 삶과 죽음의 신비가 공존하는 성소이며, 이곳에서 인간은 자기다움의 가치를 꽃피우고 타자와 상생,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경이로움의 장소입니다.

설교수는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을 하나의 모델로 삼아 도시 속 현대인의 지친 삶의 맑은 숨터, 편안한 쉼터, 지혜의 샘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숨, 쉼, 샘 생태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은 도시 가까이에 작은 정원을 조성해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휴식과 힐링, 배움과 돌봄의 공동체를 이루는 시민문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의 단순한 취미공간을 넘어 도시에서 자연을 접하고 이웃과 관계를 맺는 생활공간이라는 점에서 설 교수가 지향하는 생태정원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정원의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정원 역시 단순한 가드닝 공간이 아닙니다.

아파트와 디지털 환경 속에서 흙을 접할 기회가 줄어든 아이들에게 정원은 자연을 직접 경험하는 배움터이며 환대의 공간이 됩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열매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의 속도와 기다림, 인내, 땀과 공생의 가치를 배웁니다. 정원은 생명과 살림, 사랑스런 친구들, 더불어 사는 삶, 땀방울의 가치, 나눔과 봉사의 즐거움, 생명에 대한 경외심, 안식과 축제적인 삶, 식탁의 교제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이며 놀이터입니다.

설 교수는 수십 년 전부터 아이들과 함께 농작물을 심는 ‘꼬마농부’ ‘꼬마정원사’ 수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집중력을 되찾고, 생명을 돌보는 경험을 통해 타인과 자연을 배려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정원에서의 경험이 삶의 방향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꼬마농부를 경험한 아이 가운데는 농업을 자신의 진로로 고민하게 된 경우도 있었고, 홈스쿨링을 하며 음악과 농사를 함께 이어가는 청년으로 성장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결국 정원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교실이기 전에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경험하는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정원의 철학자들’의 활동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구정원사 인문학 수업, 정원에서 하는 드로잉, 생명밥상·초록밥상 모임, 꼬마농부·꼬마정원사 수업, 1인 1나무 심기, 유기농 텃밭농사, 숲속 음악회, 다문화가족과 함께하는 모임, 친환경 음식 만들기 등이 대표적인 활동입니다. 농사와 인문학, 예술과 음식, 생태와 돌봄이 정원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3. 씨앗을 심는 일에서 노동과 음식의 가치를 배우다
정원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일부터 잡초를 뽑고 작물을 돌보는 일까지 어느 하나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노동의 과정에서 우리는 평소 잊고 지내던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마트에 진열된 상추 한 봉지가 누군가의 손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지를 직접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정원의 철학자들’은 이런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직접 땅을 일구고 작물을 키우는 과정은 단순한 농사 체험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와 친환경 먹거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 되기 때문입니다.

음식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빠르고 편리한 배달 음식과 간편식이 일상이 된 시대에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식탁에 둘러앉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설 교수와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직접 키운 작물을 수확하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과정에서 식탁은 다시 공동체가 됩니다.

이곳에서 농사를 통해 얻은 수확은 개인의 몫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작게 구역을 나누어 지은 농사의 수확은 생각보다 풍성합니다. 그리고 남는 작물은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나눕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나눔은 정원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사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관 후원을 통해 알게 된 한 아동과의 인연은 안산 등지에 거주하는 이주배경 아동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아프리카 난민 가정 등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아이들을 정원으로 초대해 땅을 만지고 놀이를 하고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은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광명 지역의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이 공간에 합류했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텃밭을 일구고 베이킹과 공예, 동화수업을 하며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알아갔습니다. 말이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함께 흙을 만지고 무언가를 만들고 음식을 나누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정원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설 교수는 자신의 공간을 무상으로 열어두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도 나눕니다. 미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림을 가르치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을 나눕니다.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 역시 필요한 사람에게 건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정원에서 시작된 나눔은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공동체란 거창한 조직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누군가와 나누면서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4. 정원은 결국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곳입니다.
매년 봄이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말농장을 분양하고 상자텃밭을 나눕니다. 아파트와 콘크리트로 가득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흙을 찾고 씨앗을 심습니다.
베란다 한쪽에 작은 화분을 놓고 상추를 키우고, 방울토마토를 심고, 허브를 기릅니다. 농사를 짓기에는 턱없이 작은 공간인데도 우리는 왜 자꾸 흙을 찾는 것일까요.

저 역시 올해 베란다의 화분을 싹 정리했습니다. 서툰 농부에게 베란다는 풍년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을 주는 것을 잊기도 했고, 기대했던 만큼 자라지 않는 작물을 보며 몇 번이나 포기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얼마 전 아이가 강낭콩 모종을 들고 왔습니다. 작은 바질 화분도 생겼습니다. 다시 화분을 놓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수확을 얻기 위해서만 식물을 키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동안 계절을 느끼고,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명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와 그 수확을 나누면서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정원의 철학자들’이 보여주는 정원도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현대의 바쁜 생활속에서 우리에게 정원은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장소입니다.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며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과 자연의 도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정원은 더 이상 식물을 키우는 장소에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시 사람을 만나고,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곳입니다.

광명의 한편에서 흙을 일구며 이어가는 ‘정원의 철학자들’의 활동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자연으로부터 얻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을 누구와 나눌 것인지 말입니다.

어쩌면 정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감각을 다시 배우는 가장 오래된 작은 학교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학교의 첫 수업은 아주 단순합니다.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고, 함께 기다리는 일입니다.

* 이주배경: 본인 또는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이 이주배경을 가진 사람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외국인, 귀화·인지로 국적을 취득한 내국인, 이민자 2세, 북한이탈주민·판정인 등이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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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홀씨단 소개
공익홀씨단은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 소속으로 공익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지역소식, 인터뷰, 공익칼럼 등을 작성하는 공익활동 기자단입니다.
시민기록자로서 사회적가치 확산을 위해 활동합니다.